본문 바로가기

기타/좋은글

나비 - 전경린


지금 나의 생은 너무 사소해서 이걸 하든, 저걸 하든, 뭔가를 하든, 아무것도 하지 않든 차이가 없다. 하지만 나중엔 차이가 나겠지. 지금 한 것과 하지 않은 것에 의한 아주 큰 차이. 나중엔. ― '스물다섯, 결혼하는 여자와 여행하는 여자' (35쪽)

스무 살 땐 누구나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기 식대로 살기 위해 두리번거리고 검은색 트렁크를 들고 아주 멀리 떠나기만 하면 완전히 다른 생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서른 살에는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주 먼 곳에도 같은 생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안다. 세상에 대해서도 과대망상은 없다. 세상이란 자기를 걸어볼 만큼 가치 있지도 않다. 그것은 의미 없는 순간에도, 의미 있는 순간에도 끊임없이 상영되고, 누구의 손에도 보관되지 않고 버려지는 지리멸렬한 영화 필름 같다. 세상은 외투처럼 벗고 입는 것. 벗어버릴 수 없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누가 자신이 누구인지 알 것인가. 서른 살에는 다만 자신이 아직 자신이 아니라는 것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 서른 살, 세상은 외투처럼 벗고 입는 것 (62쪽)

독은 독으로 푸는 것이다. 다이아몬드를 다이아몬드로 자르듯이. 사랑은 사랑으로 이겨낼 수 있고, 미움은 미움으로 이겨내는 것이다. - '서른 살, 세상은 외투처럼 벗고 입는 것' (93쪽)

아주 많은 여자들이 이런 공포를 갖고 있다. 결국 끝까지 사랑에 빠져보지도 못하고 결혼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건 아마 결혼적령기 여자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공포일 것이다. 어쨌든 결혼은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과 해야 하는 것이다. 결혼을 하지 않는다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가까이 있는 남자 중 누군가와 어지간하면 사랑에 빠지려고 갖은 노력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남 못지않게 결혼도 한다. - '서른 살, 세상은 외투처럼 벗고 입는 것' (106쪽)

사랑이란 누군가와 잘 지낸다는 것과는 다르다. 엄밀히 말하면 사랑이란, 어떤 사랑도 심연 속에 자아를 내던지는 행위이고 동시에 이 사회의 윤리와 규칙, 체제와 통념, 그 전체와 맞서 겨루는 열정이고, 일상에 저항하는 힘인 것 같다. 모든 사람이 다 사랑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사람은 절대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다. ― '서른세 살, 물고기 한 마리가 바늘을 물 때' (130쪽)

나비가 날기 위해서는 몸이 뜨거워져야 한다. 30도 이상의 체온을 유지해야 비상이 가능하다. 나비의 배 쪽엔 비늘가루가 변한 털이 빼곡히 덮여 있는데 그곳에 최대한 햇빛을 쪼여 그 복사열로 체온을 올린다. 그래서 날씨가 맑은 날만 날고 흐린 날이나 비 오는 날은 비상하지 않는다. 체온이 생명이기 때문이다. ― '마흔 즈음, 변신에 성공한 나비는 더 이상 풀잎을 먹지 않는다' (167쪽)

[http://solomo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