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내야 할 일이 있어요."
"알아낸 후엔?"
"어떻게 하자는 게 아니에요.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고 있는 것처럼요,
내 의식에 깔려 있는 이 좌절감의 정체를 알고 싶어서 그래요.
그러지 않고서는 생생하게 살 수 없을 것만 같아서요."
"생생하게?"
"느끼고 싶어요.
차가운 것은 차갑게, 뜨거운 것을 뜨겁게.
내게 주어진 시간을 투명하게 느끼며 살고 싶어요.
언제부턴가 마치 남의 인생을 들여다보듯이 살고 있는 것만 같아요."
"살다 보면 인생의 재구성이 필요한 시기가 있는 법이지.
하지만 내 말은 해오던 일까지 다 멈추고서 그렇게 확 뒤돌아봐야 하겠느냐는 거지."
"시도 때도 없이 침입하는 이 좌절감을 물리치고 싶어요.
그것의 실체를 알고 나면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내가 여기에서 뭘 해야 하는지의 느낌이 얼마큼은 선명해질 것 같아요."
"두렵지 않아?"
"두려워요. 그래서 오래 미뤄왔겠죠.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건 변명에 불과했어요.
나는 어렴풋이 무슨 일인지 알고 있는거예요.
목소리들이 남아 있는걸요.
내 안에 흩어져 있는 몸과 마음을 잃은 이야기들이 목소리로 남아 떠돌고 있어요.
한편 그 목소리는 알려고 하지 말라고도 해요.
뭔지 모르겠지만 고통스러우니까, 내 무의식이 의식을 덮은 거예요.
잊어라, 잊어라...... 하면서."
"알고 나면 더 쓸쓸한 일도 있어."
그럴지도 모른다.
아니 알게 돼서 쓸쓸한 일이 더 많을지도 모를 일이다.
늘 안락의자라고 여기며 앉아 있던 의자가
알고 나니 가시로 만들어진 의자일 수도 있겠지.
내가 떠나면 견디지 못하리라고 생각해서 망설이며 떠나지 못하고 있던 사람 또한
그 자신이 떠나면 내가 견디지 못하리라 여겨 망설이며 떠나지 못하고 있는 건지도.
신경숙 / 기차는 7시에 떠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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