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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좋은글

아주 편해졌다

 

조그만 백

조그만 백을 좋아한다.

바깥 주머니만 뱀 가죽인 갈색 미니 토트백, 검은 실로 짠 바구니 모양 백,

회색 나일론 베니티 백 등 몇개를 갖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내게 변한 점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다.

전에는 큼지막한 가방을 좋아했다.

수첩과 화장품, 지갑, 약, 담배 외에도 500페이지짜리 문고본에 초콜릿,

경우에 따라서는 삼단 우산과 선글라스, 워크맨까지 들고 다녀야 할 것들이 아주 많았다.

조그만 백은 남자를 만날 때만 사용했다.

그때는 책도 우산도 초콜릿도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런 외출도 즐거웠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특별한 경우, 달콤한 '의존 외출'을 할때 뿐이다.

내게 의존은 공포에 버금간다.

"필요한 건 다 있어요."

"물론 나한테도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그런 건 신경 안 써도 돼요." 늘 그런 태도 였다.

세상에는 조그맣고 달콤한 가방이 어울리는 여자와 그렇지 않은 여자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후자에 속한다고.

그렇다고 내게 큼지막한 가방이 어울리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키도 작은 데다 팔 힘이 없어서, 큼지막하고 묵직한 가방을 들고 다녀봐야

커리어 우먼 처럼 경쾌해 보이는 일은 절대 없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지님보다 지니지 않음이 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것을 다 들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 필요한 것을 비교적 고루 들고 다닌다고 생각하기보다

아무것도 없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편이 훨씬 가뿐하지 않은가.

지갑과 집 열쇠만 있으면 족하다.

거기에 립스틱과 문고본 하나면 더 있으면 완벽하다.

그래도 필요한 것은 그때그때 그 장소에서 찾으면 된다. 아무 문제 없다.

조그만 백 하나만 있으면 어디든 갈수 있다.

정말, 아주 편해졌다.


에쿠니 가오리 / 취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http://solom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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