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타/좋은글

모든 이별은 엉망진창이다

슬픔은 아주 사소한 것으로부터 갑자기 튀어나와 나를 찌르곤 해.

종이에 베인다거나 날카로운 펜에 찔린다거나, 그런 것과 비슷해.

이를테면 책갈피 속에 꽂혀 있는 콘서트 티켓이라거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라거나

늦은 밤, 우리 집 창 밖에 서서

오래오래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 사람이

우리가 공유했던 것들을 상기시킬 때,

아픔은 내가 뒤집어쓰고 있는 딱딱한 껍질을 뚫고 단번에 심장에 이르러.

우리는 어쩌자고 그렇게 많은 것들을 함께 나누었을까.

그 순간은 행복했고 모든 추억은 지나고 나면

아름다워지는 거라고는 제발, 말하지 마.

어쩌면 나는 나에게 주어진 삶의 행복을 모두 다 소모해버린 건지도 몰라.

너를 만난 이후부터, 나는 늘 우리가 서로를 알지 못했던 시간들을

생각하면서 두려움에 떨었어.

어째서 우리는 그 이전에도 존재할 수 있었던 걸까?

하지만 그 두려움은 한편으로,

우리가 두 번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에서 기인했던 거야.

이제 우리는 헤어졌지만, 그래서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서로의 존재를 영원히 지울 수 없겠지.

무엇보다 우리는 우리가 서로 만나기

전에 얼마나 외로웠는지에 대해 알아버렸으니까.

몰랐으면 좋았을걸. 내 안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외로움의 깊이 같은 건,

정말로 정말로 몰랐으면 좋았을걸.

우린 그저 서로에게 그것을 일깨워주기 위해 만났을 뿐이란 걸 생각하면,

이 슬픔을 이겨낼 길이 없을 것만 같아.

- S 로부터.
[http://solomoon.com/]

'기타 > 좋은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삶에 들러붙어 있던 이 모든 것들  (0) 2009.06.29
한가지는 분명하다  (0) 2009.06.29
어른으로 산다는 것  (0) 2009.06.29
보이지 않은 것들  (0) 2009.06.29
좀 늦게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0) 2009.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