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타/좋은글

겸손,감사,도전...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아이에게 주며

날씨가 좋은 날이면 칼은 자연에 묻혀서 사색하며 글쓰기를 즐겼다. 뉴욕 주, 이타카 시 소재의 우리 집을 둘러싼 바로 그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 말이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방의 창을 통하여 폭포로 비스듬히 이어지는 뜰이 가득히 밀려온다. 칼은 몇 시간씩 뜰에 놓인 테이블에 꼼짝도 않고 앉아 있고는 했다.

나와 칼이 '잊혀진 조상들의 그림자'를 공동집필할 당시의 일이다. 컴퓨터에서 눈을 떼어 시선을 창 밖으로 잠시 돌렸더니, 덩치가 엄청나게 큰 사슴 한 마리가 칼의 어깨 너머로 원고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칼은 등 뒤에 사슴이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자기 앞에 놓인 우리의 원고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집중하기는 사슴도 마찬가지였다. 칼이 원고에 뭐라고 쓰는지 알고 싶기라도 하다는 표정으로 칼의 어깨 너머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던 것이다.
폭포에서 흘러내리는 물, 영겁의 역사가 층층이 새겨져 있는 저 절벽, 그리고 사슴을 비롯한 각종 야생 동물들은 아직 그대로인데, 칼이 앉아서 글을 쓰던 의자만이 텅 비어 있구나. (8p)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코스모스 - 보급판' 중에서 (사이언스북스)
칼 세이건 교수의 '코스모스'를 며칠전 구입했습니다. 중학생 아이에게 주기 위해서였지요. 책을 들춰보니 원서 출간일은 1980년. 제가 고 1때 읽고 느꼈던 '새로운 지평'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고 1때면 1981년의 일이니, 30년의 세월이 흘렀네요. 그 책은 지금도 이촌동 본가 부모님댁 제 책장 한켠에 놓여 있습니다.
 
2006년 새로운 문체로 다시 번역되어 출간된 '코스모스'를 읽으며 번역자인 홍승수 서울대 천문학과 교수와 출판사 편집자인 권기호님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번역의 고통을 생각하면, 좋은 책을 번역해 소개해주는 분들에게는 항상 고마운 마음뿐입니다.
 
"코스모스의 발견은 바로 '어제' 일어난 사건이다. 지난 100만 년 동안 우리는 지구 이외에 또 다른 세상이 있을 수 없다고 확신해왔다. 그것에 비교한다면 아리스타르코스에서 현대까지의 기간은 0.1 퍼센트에 불과한 찰나일 뿐이다. 오늘에 와서야 우리는 우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며 우리의 존재가 우주의 목적일 수도 없다는 현실을 마지못해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제야 우리는 스스로를 1조 개의 별들이 각각 거느린 1조 개의 은하들이 여기저기 점점이 떠 있는 저 광막한 우주의 바다에 부질없이 떠다니는 초라한 존재로 보고 있다..." (631p)
 
1980년, 칼 세이건은 이 책의 맨 앞에 이렇게 썼었습니다.
 
"공간의 광막함과 시간의 영겁에서
행성 하나와 찰나의 순간을
앤과 공유할 수 있었음은 나에게는 하나의 기쁨이었다."
 
그가 사망한지 10년이 된 2006년, 그의 부인인 앤 드루얀은 자신의 남편을 회상하며 맨 위에 소개해드린 글을 썼습니다. 자연에 묻혀서 덩치 큰 사슴과 함께 뜰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칼 세이건의 모습. 상상만으로도 참으로 아름답지요.
 
'코스모스'를 아이의 책상에 슬며시 놓아둡니다. 30년 전에 아빠가 읽고 느꼈던 감동을 아이가 경험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책을 읽고 나서 광대한 우주와 영겁의 시간을 생각하며, 스스로에 대해 '겸손'해지고, 나아가 '감사'하는 마음과 '도전'해보겠다는 열정을 아이도 가질 수 있게되면 좋겠습니다.

'기타 > 좋은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겸손함은 그 사람의 꿈의 크기다  (0) 2010.06.14
밥통 속에는 밥이 적게  (0) 2010.06.14
그건 내 잘못이야  (0) 2010.06.14
태산은 한줌의 흙이라도 사양하지 않는다  (0) 2010.06.14
공유  (0) 2010.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