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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사 미분양 아파트를 국민세금으로 사주는 정부, 그리고 '도덕적 해이'

 
정부가 전국 미분양 아파트 적체 해소를 위해 칼을 빼들었다. 지난 3월 18일 당정협의에서 확정한 지방 미분양 양도세 감면 및 취득.등록세 감면 혜택에 이어 올해 들어 벌써 두번째 대책을 제시한 것이다.
 
 
정부가 23일 내놓은 대책은 환매조건부 매입과 리츠.펀드 및 미분양 담보부 건설 회사채 유동성 활성화를 통해 미분양 매입을 촉진함으로써 자금난에 빠진 건설사의 유동성을 지원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부는 이번 대책으로 총 5조원에 달하는 자금 투입과 보증 지원 등의 방법으로 올 한해 총 4만가구의 미분양을 해소한다는 방침이다.

'미분양 4만가구 어떻게 해소하나' 중에서 (연합뉴스, 2010.4.23)
 
 
정부가 또 다시 건설사들의 미분양 아파트를 사주기로 했습니다. 국민들의 '세금 5조원'을 들여 팔리지 않고 있는 건설사들의 아파트를 매입해준다고 합니다.
 
정부가 23일 발표한 '주택 미분양 해소 및 거래 활성화 방안'. 대한주택보증을 통해 3조원을 들여 2만 가구의 준공전 미분양 주택을 매입하고, 리츠,펀드 등을 활성화하고 미분양 담보회사채 유동화를 지원하는 등의 방법으로 총 5조원의 자금을 직간접적으로 투입해 미분양 주택 4만가구를 감축하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입니다. 이번 대책을 통해 현재 11만6천가구에 이르는 미분양 물량을 4만 가구 정도 줄여 7만5천가구 수준으로 유지하겠다는 것입니다. 업체당 매입한도는 1천500억원이고 매입가격은 분양가의 50% 이하 수준이랍니다. 매입해주는 가격이 너무 낮다고 건설사들이 불만을 표시한다는 말도 들립니다.
 
쉽게 표현하면 수요예측을 잘못했거나 분양가를 너무 높게 책정해 팔리지 않은 아파트들을 정부와 공기업이 대신 떠안아주는 것입니다. 국민들이 내는 세금으로 사업에 실패한 건설사들을 도와주는 겁니다. 처음도 아니고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정책입니다.
 
동네에서 빵집을 하는 김사장. 고객이 좋아하지 않는 빵을 만들어 매장에 내놓았습니다. 가격도 좀 비싸게 붙였지요. 당연히 빵은 팔리지 않았고, 어려움에 처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런 위기를 그는 혼자서 스스로 이겨내야 합니다. 안타깝지만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고객이 어떤 빵을 좋아하는지 밤을 새서 연구도 하고, 가격도 적정한 이윤만 붙여서 판매해야 합니다. 규모는 다르지만 이렇게 고군분투하는 기업이나 가게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수도 없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만든 빵이 팔리지 않았다고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대신 사주기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정부가 매입해줄 리도 없지요. 만일 팔리지 않아 버려야하는 빵을 정부가 매입해달라고 요구하는 빵집 주인이 있다면,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가 비웃을 겁니다.
 
그런데 건설사, 금융기관 등 몇몇 분야는 좀 상황이 다릅니다. 명분이야 '국민경제'에 미치는 부작용이 커서...라고 붙이지만, 결국은 '도덕적 해이'를 가져오는 '대마불사'이고 '특혜'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번 주택건설업체 지원책과 관련해, "어려워진 서민경제를 살릴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감안해 정책적 지원을 하게 되겠지만 건설업자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정부 차원의 엄정한 대응도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엄정한 대응'이 이루어질까요. 정말 '서민경제'를 살리기 위해 지원을 결정한 것일까요. 혹시 선거를 앞뒀기 때문에, 또는 건설사들의 막무가내식 요구에 졌기 때문은 아닐까요. 이런저런 착찹한 생각이 밀려옵니다.
 
부동산 경기가 호황일 때는 지은 아파트가 날개 돋힌듯이 팔려 천문학적인 이익을 보는 건설사들. 그들이 고맙다고 세금을 더 냈다거나 국민들에게 돈을 나눠주었다는 말은 들은 기억이 없습니다. '조세법정주의'가 있고 사기업이니 물론 당연한 일이지요. 그렇다면 부동산 경기가 불황일 때도 마찬가지여야하지 않을까요. 호황일 때는 가만히 있다가 어려울 때만 국민과 정부에 지원을 소리 높여 요청하는 모습은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국민들이 볼 때 '불공평'합니다.
 
만약 정말로 건설사들의 연쇄 부도사태가 예측되고 그것이 국가경제 전체에 커다란 부작용을 가져올 것이 우려돼 불가피하게 지원을 해야한다면, 사업을 실패로 만든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고 사후에 국민세금도 회수해야 합니다. 그러나 금융, 건설 등에 대한 지원책은 여러번 보지만 '엄정성'을 목격한 기억은 없는 것 같습니다.
 
'도덕적 해이'가 분명한 이런 정책이 반복되는 것을 보아야하는 마음이 답답할 뿐입니다. 국민세금을 낭비하는 반복되는 멀쩡한 보도블록 교체공사가 아마도 '쌍둥이 동생' 쯤 될 겁니다.
지금 당장 내 지갑에서 세금을 더 꺼내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고 문제를 실감하지 못하는, 그래서 정부와 정치권에 대해 '주인' 노릇을 못하는 우리 국민들이 눈을 더 크게 뜨는 수 밖에 없습니다.